요즘의 모임이란. 느슨하지만 강렬한 공명. 하지만 개개인을 지켜주지 못하는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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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2026-01-19

요즘의 모임이란. 느슨하지만 강렬한 공명. 하지만 개개인을 지켜주지 못하는 관계다

현대의 모임들은 느슨하지만 강렬한 공명의 관계다. 하지만 사회적 안전망이 되지는 못한다. 교회는 조건 없이 관계가 유지되는 곳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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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참 다양한 모임들이 있다. 취업 스터디, 독서 모임, 러닝 동호회, 목적 없이 그저 모여 서로를 위로해주는 모임까지. 고립의 시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느슨하지만 강렬한 연결

이 모임들은 전통적 공동체와 결이 다르다. 관계는 모임 시간과 주제로 한정된다는 전제가 암묵적으로 공유된다. 혹자는 이를 '느슨한 연결'이라 부르지만, 이 표현은 현상을 충분히 포착하지 못한다. 모임 안에서는 굉장히 솔직하고 강도 높은 교류가 일어난다. 몇 주에서 몇 달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평소에는 연락하지 않는데 만나는 순간에만 내밀한 소통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지속된다는 것은, '친해져야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통념과 반대되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의 일상과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더 솔직해질 수 있다. 직장이나 가족처럼 기존 삶과 얽혀 있지 않기에, 털어놓은 이후에 대한 불안을 잠시 접어두고 더 깊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

이 관계의 바탕에는 동질성이 자리잡고 있다. 관심사뿐 아니라 삶의 단계와 긴장의 수준까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인다. '나도 그렇다'는 말 한마디가 위로가 된다. 주는 사람은 없는데 받는 사람이 생긴다. 이 관계는 주고받음이라기보다 공명에 가깝다.

공명의 조건이 깨질 때

이 공명에는 발생 조건이 있다. 서로의 위치와 수준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이 균형이 깨지는 순간 연결은 흔들린다. 정서적 공감을 위한 모임에서 누군가가 훨씬 자주, 훨씬 깊은 우울을 꺼내면 그 사람은 점점 자리를 잃는다. 취업 모임에서 누군가 먼저 합격하면 모임 자체가 해체된다.

그래서 이런 모임은 전통적 공동체가 하던 사회적 안전망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수많은 모임에 참여하면서도 마음 한편의 불안을 해소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나에게 상대는 '사람'이 아닌 '내 경험을 비추는 거울'로만 존재했던 것일까.

그래서 교회는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

전통적 공동체가 해체된 시대에, 사람들은 특정 상황과 시점에 한해서만 공동체만큼의 공감과 연대를 경험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온 것이 아닐까. 다른 사람의 삶을 떠안을 여유가 없는 조건에서 그나마 연결을 유지할 수 있는 현실적 선택이다.

여기서 교회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일주일에 하루 모여 환대하고 찬양하고 같은 말씀을 듣는 것은 앞서 이야기한 모임에서도 유사하게 경험할 수 있다. 교회가 달라야 하는 것은, 동질성이 객관적 조건이 아니라 모두가 죄인이라는 사실로 유지되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직해도, 병에 걸려도, 형편이 기울어도 관계가 유지되고, 물질적 정서적 필요를 직접 채워주는 곳. 그런 곳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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